김한샘(b. 1990)의 개인전 《Swords and Sorcery》가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린다. 《FORBIDDEN ALCHEMY》(공간 형, 2018)과 《드래곤즈 퐈이어》(취미가, 2020)에 이은 세 번째 개인전이다. 이 세 전시는 마치 3부작 드라마같이 연결된 서사 구조로 되어 있다. 첫 개인전에서 작가는 관객에게 비디오 게임 프로그래밍과 태블릿(tablet) 작업으로 천사(天使)에게 무자비하게 벌을 내리는 신(神)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진리를 깨달은 천사를 두려워한 나머지, 천사에게 영(靈), 혼(魂), 육체가 분리되는 벌을 내렸는데, 영은 유니콘이 되어 미래로, 혼은 사슴이 되어 과거로 보내지고, 껍데기인 육체는 숲이 되어 현재에 남았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언급되는 타락천사(墮落天使) 관련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서사는 다분히 천사의 시점에서 창작된 것이다. 이 비디오 게임은 유니콘과 사슴이 생명을 담보로 자기 파괴적 결투를 벌이도록 프로그램 되었다. 결국 천사는 작가 자신의 대체 희생자였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용(龍) 모티프가 등장했다. 요한묵시록에서 성 미카엘과 싸우던 붉은 용,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성 미카엘의 왼발에 짓밟힌 채 죽음 직전의 순간에 있는 용은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사탄의 메타포이다[그림 1]. <녹색용을 무찌르는 용사>(2020)에서 “지옥 같은 업화를 뿜어내는 ‘멸진(滅盡)의 사룡 데스무스’”도 혀를 내민 채 목이 잘리는 수모를 겪었다[그림 2]. 그렇다고 김한샘의 작품에서 용 모티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퇴마도(退魔圖)>(2020)에서는 더 이상 미카엘 대천사에게 목숨을 내어줘야 하는 용이 아니라 물을 지배하는 수신, 용신신앙(龍神信仰) 속의 용으로 등장했다. 이후, 용은 더욱 입체적으로 변했다. 작가는 <생명>(2021)에서 녹색용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비석과 유사한 조형물로 표현했다[그림 3]. 금박 테두리의 그림을 품고 있는 괴수 형상의 이 조형물은 노트르담 성당 등 고딕 성당의 괴물 조형물 가고일(Gargoyle)처럼 이중적이다. 가고일은 우상 숭배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악령을 내쫒고 성당을 수호하는 역할도 한다고 믿어지지 않는가? <생명>에서도 괴수의 부활이 불안과 공포를 일으키는 상황, 그리고 용이라는 모티프가 소멸하지 않았음을 안도하고 기념하는 상황이 동시에 펼쳐진다.
용이 양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에는 16-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회화(Vanitas)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부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바니타스에는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해골, 부패하기 직전의 과일, 방금 꺼진 초에서 피어나는 연기 등의 모티프가 포함된다[그림 4]. 생의 유한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바니타스의 필멸뿐 아니라 부활도 동시에 표현했다. 흥건하게 고인 피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아, 다시 나무가 소생한다. 그래서일까? (2021)에는 마치 죽은 녹색용이 부활한 듯 분노에 찬 붉은 용이 출현한다. 용은 자신의 무덤, 비석을 깨뜨리고 나와 자기 죽음에 동조한 이라면 그 누구든 파멸에 이르게 만들겠다며 포효한다.
김한샘이 이원적 세계관을 토대로 한 게임의 세계 안에서 초기 작업을 시작했었다면, 근래에는 우상(idol), 페티시(fetish), 토템(totem)의 의미가 혼재된 대상을 개입시키면서 작업의 영역을 확장했다. 예를 들어 작가는 탄생 신화가 연상되는 <산석도(山石圖)>(2020)[그림 5], <해석도(海石圖)>(2020), <천석도(天石圖)>(2020)에서 석물(石物) 모티프를 남근, 알, 씨앗 등의 도상으로 표현했다. 미국의 학자 W. J. T. 미첼(W. J. T. Mitchell, b. 1942)은 토템과 페티시, 우상의 범위는 상품이나 기념품, 가족사진, 소장품처럼 다소 일상적이고 세속적이며 현대적인 ‘특별한 사물들’에서부터, 종교의식과 서사, 예언과 예견에 연관되는 신성하고 마법적이며 언캐니한(uncanny) 사물들까지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지와 제의적 실천의 부류를 구성하기 때문에, 스펙터클하기 때문에, 이미지 만들기, 장식, 회화, 조각과 연관되기 때문에 토템과 페티시, 우상은 미적 범주들과 연관된다고 기술했다. 미첼은 우상은 인간 제물을, 페티시는 보여지기(behold)를, 그리고 토템은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기술했다. W.J.T. 미첼, 김전유경 옮김,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린비, 2010 [2005], pp. 294-295.
<숲속의 보석 The Jewel in the Forest>(2021)과 같은 작품 등에서 알 수 있듯 유색 보석, 금으로 만들어진 성작, 그리고 보석이 세팅된 검과 같은 판타지에 등장하는 사물도 이러한 우상, 페티시, 토템적 성격을 강력하게 드러낸다[그림 6]. 그런데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경배의 가치를 가지는 사물의 창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존재는 누구인가? 일신교의 하느님인지, 다신교의 신인지, 조상숭배의 신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에 대해 숭배해야 할지, 강박적 실천을 진행해야 할지, 축제나 희생제의를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 마음에 갈등이 인다. 또한 김한샘의 사물이 종교적 사물, 개인적 장식, 아니면 대중적 기념물 중 어디에 더 가까운지도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가? 신학인가, 정신분석학인가, 인류학인가. 천사와 남근석, 유니콘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그림, 동양의 용과 천사, 토템으로서의 석물이 한 번에 등장하는 화면, 그리고 검은 머리의 천사가 무리를 지어 승천하는 작품은 비디오 게임 주인공의 만화적 귀여움으로 관객의 시선을 강탈하는 동시에 클리셰(cliché)에 반대한다[그림 7]. 김한샘은 규범을 의식적으로 포기했으며, 상투적인 요소의 조합을 통해 전혀 상투적이지 않은 그림을 만들어냈으며, 이를 위해 자신의 내면의 눈에만 철저히 의존했다.
김한샘은 컴퓨터에서 이미지를 만들어 이 이미지에 물질적 보조물을 선물했다. 물질적 보조물은 디지털 이미지로 하여금 명령을 수행해야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는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구이다.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명령으로 시작해 명령 수행 과정을 거쳐, 수행이 완료되면 종료된다. 복종하기만 하면 생존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물질적 매체는 태생적으로 비물질적인 이미지가 현실의 그림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W.J.T. 미첼, 김전유경 옮김,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린비, 2010 [2005], p. 129.
우리가 그림을 벽에 걸 수 있어도 이미지를 벽에 걸 수는 없지 않는가. 김한샘은 자신이 만든 디지털 이미지에 최적화된 물질적 매제를 만들어주었고, 이미지가 그림이 되어 현실 세계의 다른 존재들과 촉각 지각적으로 조우할 수 있도록 조력했다.
사실 ‘디지털 드로잉(digital drawing)’이라고 불리는 이 이미지는 재현보다는 자신의 결핍에 더 큰 관심이 있다. 이미지는 자신에게 결핍된 안료와 바인더(binder)를 욕망하고, 기술적으로 그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피그먼트 잉크로 출력한 디지털 이미지가 에폭시에 녹아들며 안료가 접착되는 상황을 욕망한다. 출력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림이 된 이미지는 더 견고한 삶을 얻기 위해 지속해서 사고하고 움직였는데, 때로는 액자를 찾아 그 안에 몸을 누이기도, 작가가 마련해준 조각과 같은 조형물에 부착되기도, 그리고 <하피>(2021)에서처럼 돌과 같은 자연을 상징하는 근원적 물질을 찾아 그 표면에 들러붙기도 했다[그림 8]. 이제 사이버네틱스 복제시대, 디지털 환경에서 픽셀에 의존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가상에서 벗어나 종이와 잉크, 에폭시라는 몸을 얻어 물질적 사물이 되어 우리 앞에 서 있다. 작가는 자신의 노동을 투입해 디지털 드로잉이 자신의 태생적 전기적 특성을 거부하고, 현실에서 특정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마련해주었다[그림 9]. 더이상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도 다른 존재의 의의를 모의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리하면, 김한샘이 작업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판타지 게임의 시각적 재현이나 종교적 서사이기보다는 도대체 그림이란 무엇인가, 형식적으로 새로운 회화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림의 존재의 의의는 무엇인가였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의 전기적 특성 그리고 무한 복제의 가능성보다 그림의 물적 토대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분명히 말한다. 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작품을 얻을 수 없다. 작가는 물질로 구축된 예술 작품이 작가의 노동 없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림의 존재 의미가 이미지의 존재 의미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가 작가의 궁극적 질문이 아닐는지. 작가는 디지털 픽셀 이미지에게 최적의 물적 토대를 찾아주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선뜻 선사했고, 그 과정에 몰입했다. 21세기 디지털 복제 시대, DNA도 복제하는 상황에서도 그림이 되고 싶은 픽셀의 욕망은 강해지기만 했고, 이에 김한샘은 그 누구보다 더 충실하게 응답했다.